TC본딩과 하이브리드 본딩 차이 — HBM 패키징 핵심 기술 비교

HBM 한 개 안에는 얇게 깎은 DRAM 다이가 최대 16장까지 쌓여 있습니다. 두께 30~50µm짜리 칩을 수직으로 올리려면, 층마다 전기적으로 연결하면서 물리적으로도 단단히 붙여야 하죠. 이 ‘붙이는 기술’이 바로 본딩입니다. 현재 업계에서 쓰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 — TC본딩과 하이브리드 본딩. 같은 목적을 가졌지만 원리와 한계가 완전히 다릅니다. 둘은 정확히 어떻게 다르고, HBM은 언제 하이브리드 본딩으로 넘어가게 될까요?

TC본딩 — 열과 압력으로 납땜하는 방식

TC본딩은 Thermocompression Bonding의 줄임말입니다. 원리는 직관적입니다. 구리 기둥(필러) 위에 주석·은 합금으로 된 솔더캡을 올리고, 위에서 열과 압력을 동시에 가해 녹여 붙이는 겁니다. 달궈진 다리미로 윗면을 꾹 눌러 접착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됩니다.

이 방식의 강점은 검증된 안정성입니다. 현재 양산되는 모든 HBM이 TC본딩 또는 그 변형을 씁니다. SK하이닉스의 MR-MUF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칩을 전부 쌓은 뒤 한꺼번에 리플로우(재가열)하고, EMC 소재로 빈틈 없이 채워 방열과 생산 속도를 동시에 잡았습니다. 삼성전자는 TC-NCF라는 비전도성 필름 기반 변형을 사용하고 있죠.

단점은 구조적 한계에 있습니다. 칩 하나하나에 개별적으로 열과 압력을 줘야 하니 한 번에 많은 칩을 처리하기 어렵습니다. 더 큰 문제는 범프 피치입니다. HBM3E 기준 범프 간격이 20~30µm인데, 칩 적층 수가 늘어날수록 이 간격을 더 좁혀야 합니다. 마이크로범프 방식으로는 10µm 이하로 내려가기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하이브리드 본딩 — 범프 없이 구리끼리 직접 붙인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접근 자체가 다릅니다. 솔더캡도, 범프도 없습니다. 두 칩 표면에 있는 구리 패드와 산화물(SiO₂) 절연체를 직접 맞대고 붙이는 방식입니다.

공정은 두 단계로 나뉩니다. 먼저 산화물 표면끼리 상온에서 공유결합을 형성합니다. 그다음 어닐링, 즉 가열 과정을 거치면 구리가 열팽창하면서 패드끼리 단단히 접합됩니다. 범프라는 중간 매개물이 사라지니, 연결 간격을 극단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양산 기준으로도 10µm 이하가 가능하고, IMEC은 연구 단계에서 400nm 피치까지 달성했습니다.

이미 양산에 들어간 분야도 있습니다. 소니가 이미지 센서에서 처음 적용했고, TSMC는 SoIC 패키징에서 6µm 피치의 하이브리드 본딩을 2025년부터 본격 가동하고 있습니다. TSMC의 SoIC 월 생산능력은 2023년 말 2,000장에서 2025년 14,000장 이상으로 급격히 늘어나는 중이죠.

같은 목적, 다른 조건 — 두 기술의 핵심 차이

두 기술의 차이는 단순히 ‘범프가 있느냐 없느냐’에서 출발하지만, 그 차이가 만들어내는 결과는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갑니다.

미세화 여력. TC본딩의 마이크로범프는 현실적으로 10µm 부근이 벽입니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그 벽 아래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연결 밀도로 환산하면 mm²당 약 10,000개 이상의 접점을 만들 수 있어, 마이크로범프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입니다.

전기적 성능. 구리와 구리가 직접 만나니 기생 캐패시턴스와 저항이 줄어듭니다. 기생 캐패시턴스란 설계 의도와 무관하게 도체 사이에 생기는 원치 않는 전하 저장 현상으로, 신호 지연과 전력 낭비의 원인이 됩니다. 솔더 없이 구리 직접 접합으로 이를 억제하면, 전력 소비가 낮아지고 신호 속도도 개선됩니다.

열 방출. 16단 HBM 시뮬레이션에서 하이브리드 본딩은 마이크로범프 대비 열저항이 약 47% 낮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솔더 대신 구리가 연속적인 열전도 경로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적층 수가 늘수록 방열은 더 심각한 문제가 되니, 이 격차는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공정 난이도. 여기서 균형이 맞춰집니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유전체 표면 거칠기 0.5nm 이내, 구리 패드 2nm 이내, 정렬 정확도 100nm 미만이라는 프론트엔드급 정밀도를 요구합니다. TC본딩에서는 필요 없는 수준이고, 생산 비용도 수 배에 달합니다.

정리하면, 하이브리드 본딩은 성능에서 앞서지만 비용과 난이도에서 뒤처집니다. TC본딩은 반대입니다. 결국 ‘언제 전환하느냐’는 성능 요구가 비용 장벽을 넘는 시점에 달려 있는 셈입니다.

HBM은 언제 하이브리드 본딩으로 넘어가는가

원래 업계에서는 HBM4(16단)부터 하이브리드 본딩이 필수라고 봤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JEDEC이 HBM4 패키지 높이 규격을 720µm에서 775µm로 완화하면서, 마이크로범프로도 16단을 쌓을 여유가 생긴 겁니다. SK하이닉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16단에서도 MR-MUF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이미 검증된 공정을 최대한 쓰겠다는 전략입니다.

삼성전자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HBM4E(16단 이상)부터 하이브리드 구리 본딩(HCB)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고, 관련 설비 반입을 진행 중입니다. 2027년 양산이 목표죠. SK하이닉스도 HBM4E(20단) 세대에서는 하이브리드 본딩을 본격 도입할 계획입니다.

업계 컨센서스는 20단부터는 하이브리드 본딩이 사실상 필수라는 쪽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높이 제한 안에서 20장을 쌓으려면 다이를 더 얇게 깎아야 하고, 범프까지 얇아져야 하니 마이크로범프로는 감당이 안 되는 거죠.

장비 공급망도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이브리드 본딩의 핵심 병목인 CMP(화학적 기계적 연마) 장비를 쥔 Applied Materials와 하이브리드 본더의 Besi가 동맹을 형성했습니다. 하이브리드 본더 시장은 2028년 약 20억 달러(약 2조 8,000억 원) 규모로 커질 전망입니다. 국내에서는 한미반도체가 인천에 하이브리드 본더 전용 공장을 짓고 있으며, 2026년 하반기 가동을 앞두고 있습니다.

본딩 기술이 갈리는 지점에서 경쟁이 시작된다

TC본딩과 하이브리드 본딩의 차이는 결국 ‘지금의 효율’과 ‘내일의 성능’ 사이 선택입니다. 그 경계선이 HBM 세대마다 조금씩 이동하고 있고, 그 위에서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전략이 갈라지고 있습니다.